포르쉐 (porsche A.G)는 독일의 자동차 제조회사.

본거지는 독일 남서부의 도시인 슈투트가르트이며 고급 스포츠카와 레이싱카를 전문으로 개발,제조하며 그중에서도 1963년 발표된 스포츠카 '포르쉐911' 은 개량을 거듭하면서 제조,판매되고있다. 그떄문에, 수냉엔진이 된 신세대 포르쉐또한 '리어엔진'과 '911'의 이름은 하나의 기호로서 남겨져있다.



개요

폭스바겐 타입1을 설계한 기술자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아들인 페리 포르쉐에 의해 1947년에 설립되었다.

1971년에 포르쉐 일가는 경영에서 손을 떼어 동족경영을 피하고있다. (다만 포르쉐가는 엄연히 동사의 대주주이다) 이때 포르쉐의 기술자였던 포르쉐박사의 손자(딸 루이자의 아들)인 페르디난트 피에히 (후에 폭스바겐 그룹 회장)과 또한명의 손자 (페리의 아들),디자이너였던 부취 포르쉐 (후의 포르쉐 디자인 사장)도 회사를 떠났다. 현재의 CEO는 벤데린 뷔데킹, 단속역회회장은 볼프강 포르쉐 이다.

2005년 같은 독일의 자동차회사 폭스바겐 AG의 주식 20%를 보유했다. 2007년까지는 보유주 비율은 31%가 되어,사실상 동사를 산하에 두고있으나 앞으로는 51%까지 보유할 방침이라 한다. 2009년에 발표예정인 4도어 세단 포르쉐 'panamera'는 폭스바겐의 조립공장에서 생산 될 계획이다.




경영상황

*연간생산대수

포르쉐는 1990년대 전반에 최대의 시장이기도 한 미국에서의 판매부진으로 인한 적자가 늘어, 경영난을 겪던 시대가 있었지만, 1996년에 저가격의 오픈카 (로드스터형) '포르쉐 박스터' 를 투입, 이듬해에는 디자인과 설계를 전면적으로 일신한 996형 '포르쉐 911' 을 투입한 효과에 의해 판매가 호전, 2003년에는 포르쉐 최초의 4도어차 (실제로는 5도어 SUV)인 '포르쉐 카이엔' 을 투입하여, 1999~2000년도의 생산대수가 약 4만 5천대였던것에비해, 2003~2004년도의 생산대수는 약 8만대 (핀란드 공장을 합해서)로 순조롭게 늘어갔다.

1980년대 중반에는 미합중국에서의 판매가 판매율의 6할을 차지했다. 현재에는 러시아나 중국,인도,중동 등의 신흥시장에서의 판매 또한 순조로우며, 2007년의 미국에서의 판매비율은 10.3%까지 떨어졌다.



*생산거점



1.슈펜하우젠 공장

슈펜하우젠 공장은 슈투트가르트시에 있으며,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포르쉐의 주력공장이다. 포르쉐 박스터를 핀란드의 공장에서 위탁생산하기 이전에는, 많은 포르쉐들을 이 공장에서 생산하고있었다. 공장은 크게 4개의 건물로 이루어져있으며 포르쉐 센터 (판매거점)이나 포르쉐 박물관, 수리 및 특수주문 공장이 개설되어있다.



2.라이프치히 공장

생산능력증강을 위해 독일의 라이프치히 (구 동독일지구)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여, 2002년 8월에 가동개시하였다. 테스트코스까지 있는 광대한 부지에, 근대적인 외관과 설비를  갖춘 라이프치히 공장은 연간 3만대이상의 생산능력을 자랑한다. 현재 가장 판매가 호조인 포르쉐 카이엔과 소량생산차 포르쉐 카레라 GT를 생산했다.



3.사외공장

핀란드

포르쉐는 창업이래 독일의 슈펜하우젠 공장에서 생산을 행했지만, 포르쉐 박스터의 판매가 호조를 보여 핀란드의 기업 발멧사에 박스터의 생산을 위탁, 2000~2001년의 경우 생산대수의 약 4할에 해당하는 2만대가 핀란드제 박스터였다. 현재는 독일의 새로운 라이프치히 공장 가동에 의해, 핀란드공장제 박스터 생산량은 대폭 줄어들어 약 6천만대가 되었다.

슬로바키아

포르쉐 카이엔의 제조,조립은 자매차인 폭스바겐 투아렉, 아우디 Q7과 함께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의 폭스바겐 공장에서 행해진다.




F-1에 관하여


과거에 팀으로서 참전한 적도 있지만 엔진 공급사로서 1983~1987년까지 맥라렌 TAG 포르쉐로서 1.5L V6 터보 엔진을, 1991년 풋워크에 3.5L V12엔진을 공급하였다.

특히 84~85년에는 니키라우다, 알랭 프로스트에 의한 드라이버즈 타이틀, 콘스트럭터즈 타이틀을 보유,  86년에도 프로스트의 드라이버즈 타이틀 획득에 공헌하였다 

하지만 1991년 풋워크-애로우즈에 공급한 V12 엔진은 V6터보를 2개 이어놓은듯한 엔진으로 917의 수평대향 12기통과 같은 설계법을 채택하고 있으나 크랭크샤프트의 중앙에서부터 스파이럴 기어를 거쳐 뱅크 중앙의 샤프트로 출력하는 센터 테이크오프를 채용하고 있었기 떄문에, 엔진중량이 200kg을 넘는 초중량급에 크기도 크고, 출력도 나오지않는 졸작이었다. 실제로 이 엔진은 원래 87년 시즌오프때에 멕라렌에 제공되어졌지만 당시 디자이너였던 고든 머레이로부터 너무 크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풋워크-애로우즈는 3500만 달러를 투입했지만신뢰성이 부족하여 시즌 절반은 코스워스DFR로 바꾸는 바람에 포르쉐는 사실상 은퇴할수밖에 없게 되었다.  



주요 자회사

포르쉐 디자인 그룹 - 남성향의 복식 브랜드 '포르쉐 디자인'등을 전개

폭스바겐 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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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에 관련된 내용을 추가하였습니다. 써놓고보니 80년대는 잘나갔고 90년대는 완전 포르쉐의 굴욕이군요;
뭐 르망과 기타 레이스에서 워낙 날아다녔으니 저정돈 그냥 작은 흑역사로 쳐야(........)